마인드업로딩 프로젝트 - 전뇌 애뮬레이션
마인드업로딩 프로젝트
THE MASTER CODE
2013년 2월 1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포트 메이슨 센터. ‘빠르게 다가오는 멋지고 기괴한 미래’를 주제로 열린 ‘트랜스휴먼 비전 2014(Transhuman Visions 2014)’ 콘퍼런스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보였다.
메인홀 한쪽에서 젊은 사업가들이 실험적인 스마트 약물(smart drug)과 함께 특수한 버터를 넣은 커피를 팔고 있었는데 인지능력을 강화시켜주는 버터라고 선전했다. 그 옆에는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뇌파를 여러색의 문양으로 모니터에 보여주는 전극들을 착용한 채 서 있었다.
또한 강단 위에서는 머리를 삭발하고 턱수염을 기른 발표자가 ‘DIY 감각 증강’에 대해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대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Masses)’이라는 연구단체에서 개발 중인 알약 덕분에 머지않아 인간도 근적외선을 육안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자신의 외이(外耳)에 작은 자석들을 이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덕분에 자기(磁氣) 코일을 부착한 휴대폰을 활용, 소리가 아닌 진동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 일종의 이식형 무선 골전도 이어폰인 셈이다.
“종(種)으로서 인류는 지극히 작은 조각의 시공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인류가 더 넓은 시공간으로 나아가 효율성과 영향력, 창의력을 극대화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한 코엔 박사의 해법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자신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하는 것이다. 두뇌 매핑을 통해 뇌 활동을 계산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고, 계산된 결과를 실행하도록 코딩함으로써 인간은 컴퓨터 속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데스크톱 PC에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에뮬레이션 하는 것과 유사한 이치입니다. 일종의 플랫폼 독립형 코드라고나 할까요.”
이후 코엔 박사가 다양한 차트와 그래프를 보여주며 신경과학이 최근 거둔 성과들을 설명하는 동안 청중들은 경외감에 사로잡힌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아 경청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코엔 박사는 항상 트랜스휴머니스트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육체라는 껍데기를 벗어나 더 진보된 존재로 격상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의 생각을 주류 학계로 편입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격들을 갖춰 왔다.
그 노력에 대한 보답인지 그는 최근 주류 과학계와 자신의 연구 사이의 괴리감이 크게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무수한 연구자들이 뇌의 신비를 해독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해에만 각각 수십억 달러 규모의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12억 유로 규모의 ‘인간 뇌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발표했죠.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유전공학의 비약적 발전을 이뤄낸 것처럼 이 두 거대 프로젝트에 의해 뇌 과학도 놀라운 수준의 도약을 하게 될 겁니다.”
뇌 에뮬레이션은 오랫동안 여러 공상과학 작품에서 다뤄져 왔던 개념이다. 하지만 이는 컴퓨터공학 분야에도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다. 예컨대 인간의 뇌 신경회로망을 모방하려는 ‘신경망(neural network)’ 혹은 신‘ 경 네트워킹’은 신경과학을 떠받치고 있는 물리적 아키텍처와 생물학적 규칙에 기반한다.
인간의 뇌는 약 850억개의 뉴런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각 뉴런은 축삭돌기와 수상돌기라는 가느다란 돌기를 통해 최대 1만개의 다른 뉴런과 연결돼 있다. 뉴런이 발화될 때마다 전기화학적 신호가 한 뉴런의 축삭돌기에서 시냅스를 거쳐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로 전달되는 구조다. 뉴런 1개당 평균 1,000개의 시냅스가 있는 만큼 뇌의 전체 회로구조는 100조개에 달한다. 100조 가지의 다른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우리의 뇌는 복잡다단한 방식으로 정보를 부호화하고, 입력된 정보를 처리하고, 여러 정보를 연관 짓고, 명령을 실행한다.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이런 뉴런들의 상호작용 패턴 속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들, 다시 말해 기억과 감정, 인격, 취향, 심지어 의식까지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이와 관련 1940년대에 신경생리학자 워런 맥컬럭과 수학자 월터 피츠는 뇌 활동을 수학으로 묘사할 간단한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뉴런들의 복잡한 상호작용과는 상관없이 각 뉴런의 상태는 2가지, 즉 ‘활성화’ 또는 ‘휴면’ 밖에 없음에 주목했다.
초기 컴퓨터공학자들은 이 사실을 응용할 경우 인간의 뇌와 유사하도록 기계를 프로그래밍 할 수 있음을 알아챘다. 뇌의 활성화 및 휴면 모드를 모방, 1과 0으로만 이뤄진 2진법적 전기 스위치로 기계의 기본 논리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캐나다의 심리학자 도널드 헵은 인간의 기억이 네트워크 내에 부호화된 연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뉴런들에 의해 이 연상 작용이 우리 뇌 속에서 동시다발적, 또는 순차적으로 발화하는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들었다면 뇌의 시각피질과 청각피질을 구성하는 뉴런들이 동시에 발화, 두 정보를 연결한다. 며칠 뒤 다시 그 사람을 만났을 때는 얼굴만 봐도 이름을 부호화한 뉴런까지 함께 발화돼 이름이 기억나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공학자들은 이에 기반해 연상의 형성, 다른 말로 학습이 가능한 인공 신경망을 개발했다. 새로 데이터가 입력되면 그와 관련된 과거의 데이터가 링크(기억)되도록 하고, 두 데이터가 미래에 연결될 가능성도 예측하도록 신경망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이 같은 종류의 소프트웨어는 다각적 형태의 복잡한 패턴 인식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일례로 특정 소비자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분석, 일상적 소비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 있어 타인에 의한 불법 사용이 의심되는 내역을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신경과학자들은 현재의 인공 신경망을 놓고 인간 뇌의 복잡성을 구현할 첫 단추가 끼워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뉴런의 정확한 상호작용 기전이나 여러 화학적 경로가 뉴런의 발화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뇌에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규칙들이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현 시점에서 랜달 코엔 박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인 ‘개인의 정체성은 각 뉴런 및 뉴런 사이의 상호작용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가장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바로 신경망이라는 점이다. 향후 과학기술이 인간의 뇌 활동 대부분을 기록·분석할 수 있게 된다면 이론상 뇌 활동을 계산의 영역으로 옮겨 놓을 수 있다.
2014년 1월말의 어느 따스한 날 오후. 필자는 코엔 박사를 따라 2층집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포트레로 언덕에 위치한 이곳에서 그는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거실을 지나 침실로 들어가자 워킹 데스크가 눈에 띄었다. 아마도 침실 겸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는 듯 했다.
입자물리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코엔 박사는 13살 때 아더 C. 클라크의 공상과학 소설 ‘도시와 별’을 통해 정신 업로딩의 개념을 처음 접했다. 10억년 후의 미래도시 디아스파(Diaspar)를 그린 이 소설 속에서 주민들은 중앙컴퓨터에 데이터 형태로 저장돼 있다가(=영혼의 집, House Of Soul에 저장되어 있다가) 육체가 만들어지면 정신을 입력해 살아간다. 그리고 육체가 죽으면 다시 중앙컴퓨터에 저장돼 새 육체를 공급받을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식으로 영원히 환생한다.
“인간의 육체와 뇌는 유한한 존재에요. 하지만 클라크는 인간이 정보로서 존재하고, 그 정보가 새로운 육체로 갈아 탈 수 있는 미래를 그려냈어요. 이 책을 읽고 인간의 한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정신 업로딩이 인생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꿈이라 여겼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것도 각 원자의 배열을 재구성할 방법을 알아내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전자 두뇌(digital brain) 관련 지식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대학원에 진학, 신경망과 인공지능을 공부했다.
그러던 1994년 그의 삶에 중요한 전기가 찾아왔다. 자신과 동일한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발견한 것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컴퓨터광이자 신경과학자, 그리고 자칭 영생주의자인 조 스트라우트가 운영하는 ‘마인드 업로딩 홈페이지(mind uploading home page)’였다.
코엔 박사는 즉시 스트라우트의 토론 그룹에 가입했고, 기술적으로 뇌로부터 정보추출이 가능한지 또는 그런 행위를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에 대해 회원들과 논쟁을 벌였다. 다운로딩, 업로딩, 정신 이동(mind transfer) 등을 놓고 공방을 벌인 끝에 회원들은 ‘전뇌 에뮬레이션(whole brain emulation)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론 내렸다.
이후 각 회원들은 이 꿈을 이룰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코엔 박사의 경우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계산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보스턴대학 신경생리학연구소에서 쥐의 뇌 활동을 컴퓨터에서 재현하는 연구도 수행했다.
스트라우트 또한 신경과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솔크 연구소에 들어가 계산 신경생물학을 연구했다.
“당시 선배 신경과학자들은 저희들의 연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닌 데다 연구보조금을 얻기에는 주류과학에서 너무 벗어나 있다는 거였어요.”
2007년에는 트랜스휴먼에 따른 생명윤리를 연구 중이던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계산신경학자 앤더스 샌드버그 교수가 자신의 연구주제에 흥미를 가진 전문가들을 초청해 2일간의 워크숍을 개최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뇌 구조 및 작동기전의 도식화, 각 작동기전의 기능적 역할, 뇌 구조를 모방할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의 개발 등 인간의 뇌를 에뮬레이션하기 위한 로드맵을 설정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코엔 박사는 보스턴대학을 떠나 유럽 최대 민간연구기구 중 하나인 스페인의 파트로닉 테크날리아(FATRONIKTecnalia) 연구소장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2010년 다시 실리콘밸리의 나노기술 전문기업 헬시언 몰레큘러의 분석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파트로닉 연구소는 전뇌 에뮬레이션에 따르는 어떤 리스크도 감수하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가져올 찬란한 미래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었죠.”
반면 페이팔의 공동설립자 피터 시엘, 억만장자 사업가 엘론 머스크 등으로부터 2,0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출자 받아 설립된 헬시언은 달랐다. 이 회사의 궁극적 목표는 저렴한 DNA 서열분석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었지만 경영진은 코엔 박사의 목표를 인정했고, 그 목표에 다가설 시간과 자원을 지원해줬다.
2012년 헬시언이 예기치 않게 문을 닫을 때쯤 코엔 박사는 정신 업로딩 지지자들의 허브 역할을 할 ‘카본카피스(carboncopies.org)’라는 비영리기구를 창설했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수개월 뒤 러시아 닷컴 업계의 거물이자 억만장자인 드미트리 이츠코프의 자금 지원을 약속받았다. 자신을 정교하고 인공적인 존재에 업로드하고 싶어 했던 이츠코프에게 전뇌 에뮬레이션의 구현은 필수적으로 거쳐야할 단계였던 것이다.
코엔 박사는 워킹 데스크의 모니터에 차트를 띄우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뇌 에뮬레이션이라는 신학문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도록 만들기 위해 저희는 그에 걸맞은 기초를 제공해야 합니다.”
차트에는 로드맵의 목표에 맞춰 이름과 소속이 적힌 원들이 겹쳐져 있었는데 코엔 박사는 가장 바깥쪽 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들이 바로 저희와 양립 가능한 연구개발 목표를 추구하는 연구자들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안쪽의 작은 원을 가리켰다. 전뇌 에뮬레이션을 주도하는 신경과학자들이었다. “저와 한 배를 탄 사람들이죠.”
오늘날 정신 업로딩 분야의 로드맵에 적시된 모든 핵심적 과제는 공교롭게도 신경과학계가 활발히 연구 중인 영역과 일치한다. 물론 연구의 목표는 전혀 다르다.
이와 관련 뇌 지도 매핑 분야의 권위자인 제프 리히트먼 박사는 하버드대학에서 인간의 뇌 속 모든 뉴런들의 상호 연결지도를 만들기 위한 국제 뇌 과학 프로젝트 ‘휴먼 커넥톰(Human Connectome)’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재 주력하고 있는 주제는 경험이 부호화되는 물리적 메커니즘을 뇌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리히트먼 박사팀은 정신 업로딩 전문가이자 리히트먼 박사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었던 케니스 헤이워드가 개발한 획기적 장비를 활용한다. 이 장비는 쥐의 뇌를 면도날처럼 얇게 썰어서 순서대로 릴 테이프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이를 스캔한 전자현미경 이미지를 컴퓨터 모니터에 나타낸다. 이렇게 개별 뉴런들을 마치 영화 필름을 한 프레임씩 보듯 연속적으로 관찰한 리히트먼 박사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축삭돌기와 수상돌기가 만나 시냅스가 형성된 곳을 따라가 보면 동일한 수상돌기에 또 다른 시냅스가 만들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 80~90개의 수상돌기가 널려 있음에도 축삭돌기가 특정 수상돌기를 일부러 선택한 듯이 말이죠. 이는 인간의 뇌 속 뉴런들이 무작위로 엉켜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리히트먼 박사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던 5년 전만 해도 뇌 이미징의 속도는 거북이보다도 느렸다.
“이런 장비들을 다수 운용할 경우 인간의 뇌 전체를 이미징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리히트먼 박사팀과는 별도로 상당수의 연구팀들이 뉴런의 기능을 도식화하고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작년 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브레인 이니셔티브도 그중 하나다. 초기 투자비만 1억 달러에 달하는데 연구자들은 전체 연구비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 수준인 38억 달러까지 확대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브레인 이니셔티브에 영감으로 준 것으로 알려진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신경과학자 라파엘 위스트 박사는 지난 20여 년간 뉴런의 활성화 기전과 다른 뉴런을 억제하는 방식을 추적할 도구의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뉴런들이 신경망에서 발화하는 방식과 상호작용을 연구하면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 같은 정신질환의 실체 규명을 비롯해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은 뇌 활동 속에 숨겨져 있다고 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머릿속에 마법 같은 것은 없어요. 뉴런의 발화가 있을 뿐입니다.”
과학자들이 이 뉴런의 발화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각 뉴런의 활동을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미세공정 기술로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MIT 미디어랩의 신경공학자 에드워드 보이든 교수는 지금보다 밀도가 100배나 높은 전극 어레이를 개발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대학 버클
리캠퍼스 연구팀은 지난해 ‘신경 먼지(neural dust)’라는 나노 입자를 뇌의 피질에 이식해 무선 ‘뇌-기계 인터페이스(BMI)’로 활용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에 뒤질 세라 EU도 지난해 야심찬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12억 유로의 연구비가 투입되고, 130개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인간 뇌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지금껏 알려진 뇌의 작동기전을 모두 통합한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개발이다.
코엔 박사는 최근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이 모든 상황에 전율을 느낀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그가 특히 주목하고 있는 연구는 동물실험이 한창인 ‘뇌 시뮬레이션’ 기술이다. 2011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과 웨이크포레스트대학 공동연구팀이 세계 최초의 인공 신경 이식에 성공한 것. 연구팀을 이끈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생물의공학자 시어도어 버거 박사에 의하면 인공 신경을 이식받은 쥐는 인공 신경의 전기신호를 실제 뉴런의 전기신호와 동일하게 받아들여 반응한다.
“해마 속 개별 뉴런들의 신경 부호, 다른 말로 뉴런의 시공간적 발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이 분야 연구에 엄청난 돌파구가 생긴 겁니다.”
연구팀은 해마의 두 영역에 존재하는 뉴런들이 전기신호를 변환, 새롭게 재배열하여 뇌의 다른 부분에 전파하는 방식으로 장기기억의 저장에 관여한다고 봤다. 그래서 연구팀은 쥐에게 특정훈련을 반복시켜 뇌에 기억되도록 하면서 그때의 뉴런 입·출력 신호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출력신호를 인위적으로 송출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컴퓨터 칩을 준비했다.
“쥐의 해마 중 한 층을 파괴했더니 기억을 하지 못하더군요. 그런데 인공 신경(컴퓨터 칩) 이식했더니 해마가 파괴되기 전처럼 기억을 해냈습니다.”
이후 영장류의 해마와 전전두엽에 위치한 뉴런들의 활동까지 재현해 낸 연구팀은 앞선 연구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한층 복잡한 기억과 행동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할 계획이다. 이 실험까지 성공할 경우 해마 절제술을 받은 간질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공 신경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에 돌입하게 된다.
코엔 박사는 이 실험을 이렇게 평가했다.
“버거 박사팀의 실험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뇌 회로의 작동기전을 분석, 인위적 방식으로 그 기능의 대체가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뇌는 아주 많은 뇌 신경 회로들의 군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날 오후 코엔 박사는 샌프란시스코주에서 50㎞ 떨어진 페탈루마의 복합상업지구의 한 건물로 필자를 데리고 갔다. 알프스산과 열대의 석양을 배경으로 집‘ 중’, 상‘ 상력’과 같은 단어가 크게 적힌 포스터들로 치장된 건물이었다.
회의실에 들어가자 진한 프랑스 억양을 소유한 은발의 전직 IBM 엔지니어인 가이 빠이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코엔 박사의 연구결과를 접하고 뇌의 물리적 구조를 모방한 신개념 에너지 절약형 컴퓨터 칩을 개발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코엔 박사가 회사 상황을 물었더니 자금난에 빠진 프랑스 남부의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를 인수하려고 협상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코엔 박사는 다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지금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나 본데, 지금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새로운 신경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려 하고 있어요. 그들의 프로토타입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연구팀의 신경 인터페이스 제작에 합류할 수 있는지 묻기도 전에 빠이예가 코엔 박사의 말을 막았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주차장을 나설 무렵 코엔 박사의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이게 제가 하는 일이에요. 개인적 호기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연구소와 연구자들을 만나서 자문을 해주고, 필요할 때는 서로를 연결시켜주기도 합니다. 그들의 연구가 두뇌 업로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도움을 청했던, 청하지 않았던 상관없이 말이에요.”
분명 이 분야의 많은 연구자들이 코엔 박사의 자문을 받고 있었고, 그와의 공동연구를 원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는 작년 봄 코엔 박사와 이츠코프가 주최한 국제학회 ‘글로벌 퓨처 2045’에서 극명히 드러났다.
2045년까지 가상의 육체에 인간의 정신을 옮기려면 필요한 것들과 정신업로딩이 갖는 의미를 논의하는 이 학회에서 강연을 하고자 MIT, 하버드대학, 듀크대학,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등 미국은 물론 세계 각지의 석학들이 뉴욕 링컨센터를 찾아왔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학회 참석자들 중에는 코엔 박사가 지향하는 ‘영적이고 과학기술적인’ 꿈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신경 먼지를 연구 중인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호세 카르메나 박사도 그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중요한 의문을 탐구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모두의 목표가 같지는 않습니다. 가능한 많은 뉴런의 활동을 기록하는 것처럼 세부 목표는 같지만 최종 목표는 다를 수 있어요. 저희 연구팀의 경우 뇌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 족합니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뇌의 모든 것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카르메나 박사 외에도 다수의 연구자들이 전뇌 에뮬레이션에 대해 말을 아꼈다. 자신들은 그 기술적 타당성에 제한적이고 조심스러운 의견을 갖고 있음에도 혹여 추종자나 지지자로 오인 받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듯 했다. 컬럼비아대학 라파엘 위스트 박사의 말이다.
“두뇌의 이해와 두뇌의 개발은 전혀 다른 얘깁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뉴런을 차치하더라도 뇌의 물리적 구조조차 매우 복잡합니다. 게다가 만일 뇌의 본질이 양자물리학에서 나타나는 확률론적 과정에 기초하고 있기라도 한다면 뇌를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에 비해 하버드대학 리히트먼 박사의 시각은 다소 긍정적이었다.
“전뇌 에뮬레이션 연구에 새로운 물리학 법칙까지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도가 개의 몸통에 소의 머리를 붙이는 것만큼 완벽히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공상과학적 아이디어이기는 해도 미친 짓은 아니에요.”
그는 전뇌 에뮬레이션 연구가 신경과학 발전에도 이로울 것이라 여긴다. 때문에 케니스 헤이워드와 같은 연구자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설령 영원히 사는 법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뇌 기능장애를 고칠 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는 판단이다.
케니스 헤이워드는 현재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HHMI) 산하 자넬리아 팜 연구캠퍼스의 선임연구자로서 뇌 신경망을 도식화하는 커넥톰(Connectome) 연구를 이끌고 있다. 지금보다 더 넓은 영역의 정확한 뇌 이미지를 보여줄 기술을 개발 중이다.
그는 또 뇌 보존 재단(BPF)을 설립하기도 했다. BPF에서는 전뇌 에뮬레이션 기술이 실용화 될 때까지 뇌를 보존할 기술의 개발자에게 상금을 걸어놓고 있다.
“전뇌 에뮬레이션이라는 주제가 논란의 대상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뛰어들 과학연구기관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알죠. 하지만 언젠가 작금의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전뇌 에뮬레이션을 하면 뭐가 좋은지에 대한 의문이다. 컴퓨터 코드 속에 갇혀서 누리는 영생이 과연 얼마나 좋을까?
필자는 곧바로 스트라우트의 토론 그룹에서 활동했던 옥스퍼드대학의 토드 후프먼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코엔 박사와 함께 그의 회사를 찾아가 전뇌 에뮬레이션이 진정한 영생인지, 인류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것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사고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인간의 역사와 본질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창의성, 동기, 지각능력 등을 연구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해요. 인간의 본질을 알아내 인체가 아닌 다른 물질에 옮길 수 있다면 개인이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저희는 인류가 하나의 종(種)으로써 계속 진화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코엔 박사 또한 전뇌 에뮬레이션이 인류를 진화와 직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지구라는 행성의 속박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고, 유기체로 된 몸으로는 불가능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보죠. 태양 가까이서 여행하는 기분은 어떨까요? 제가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우주 전체를 탐험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우리의 생물학적 인체는 정해진 시공간에서만 살 수 있지만 그 구속을 벗어 버리면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뇌 신경망의 남다른 비주얼
인간의 뇌는 수조개의 시냅스로 연결된 850억개의 뉴런들로 이뤄져 있다. 이 뉴런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인격, 기억 등의 정보를 부호화한다. 하버드대학 뇌과학센터 연구팀이 개발한 ‘브레인보우(Brainbow)’ 기술을 이용하면 이러한 뇌의 정교한 회로구조를 시각적으로 매핑할 수 있다.
1 연구팀은 형광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가 무작위 발현되도록 쥐의 뇌세포를 유전자 조작했다. 덕분에 각
뇌세포마다 독특한 색상으로 빛이 난다. 이 이미지는 해마 부위의 세포를 광학 현미경으로 촬영한 것이다.
2 해마의 치상회(齒狀回)를 따라 분포돼 있는 뉴런들은 기억의 저장에 필수적 역할을 한다. 하버드대학의 신경생물학자 제프 리히트먼 박사의 표현은 이랬다. “사실상 당신이 배우는 모든 것과 삶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해마를 거쳐 갑니다.”
3 이미지 상단부의 대뇌겉질(대뇌피질)도 기억 저장에 관여한다. 또한 운동능력, 시각 등의 의식적 활동을 제어한다. 이 부위의 고해상도 3D 이미지 데이터를 다수 확보하면 뇌세포 상호간의 연결을 추적할 수 있다.
공상과학 작품 속 정신 이동
[1929] 세계, 육체, 악마/ J.D 버낼
미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언젠가 인류는 육체를 버리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심지어 유기체인 뇌세포도 합성물질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봤다.
[1956] 도시와 별/ 아서 C. 클라크
10억년 뒤의 미래도시 디아스파(Diaspar). 이곳의 인간들은 유전자 정보의 형태로 중앙컴퓨터에 저장돼 있으며, 순번제로 인공 육체에 입력돼 영원히 환생을 거듭한다.
[1962] 휴머노이드의 창조/ 웨슬리 베리 (감독)
당신의 친구가 ‘정신 업로딩(mind uploading)’이 필요한 휴머노이드인지 알고 싶나? 그러면 새벽 4시경 로봇 신전 앞을 지켜라. 휴머노이드는 매일 그 시각에 인간의 정신이 정지되고 본부로 복귀한다.
[1966] 작은 소녀들은 뭐로 만들었지?/ 스타트렉 시즌1 7회
상사병에 걸린 엔터프라이즈호의 간호사가 약혼자를 찾고자 엑소Ⅲ 행성으로 텔레포트 된다. 하지만 약혼자는 동상에 걸린 뒤 자신의 정신을 안드로이드에 옮겨 놓은 광기어린 과학자로 변해있다.
[1968]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
시공간을 헤매던 우주탐사선 디스커버리호의 선장 데이비드 보우만이 빛에 둘러싸인 태아로 변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아더 C. 클라크의 동명 소설에 언급된 정신 업로딩이라는 개념을 참조했다.
[1982] 트론/ 스트븐 리스버거 (감독)
주인공이 만든 비디오게임 속 적(敵)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온다. 게다가 실험용 레이저로 주인공을 메인프레임 속에 디지타이징하려고 시도한다.
[1989] 정신분열증 환자/ 스타트렉 시즌2 6회
불치병에 걸린 천재 과학자가 콧노래를 불러서 엔터프라이즈호의 안드로이드인 데이터 소령의 관심을 끈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소령의 뇌에 업로드한 뒤 함선으로 돌아가 자신이 죽었다고 보고한다.
[1992] 프리잭/ 제프 머피 (감독)
갑부들이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용병을 보내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을 납치한다. 자신의 정신을 그 사람에게 업로드해 젊고 활기찬 삶을 영위하기 위함이다.
[2000] 6번째 날/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
한 기업이 안구 스캔을 통해 기억과 정신을 복제, 클론에게 옮겨 심을 수 있는 기술을 비밀리에 확보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자신의 클론이 가족들과 생일파티를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2004] 배틀스타 갤럭티카
사일런(Cylons)이라 불리는 인공두뇌 시민들에게 전사(戰死)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평상시 백업해 놓은 뇌를 새로운 몸에 이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2009] 아바타/ 제임스 카메론(감독)
하반신이 마비된 군인이 특수기계를 이용, 유전자 기술로 만든 외계인의 몸속에 자신의 의식을 주입해 원격조종한다. 이 외계인들은 ‘샤헤일루’라는 교감을 통해 동물과 생각을 공유한다.
[2014] 트랜센던스/ 월리 피스터 (감독)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앞둔 천재과학자가 과학기술 혐오단체의 공격을 받는다. 숨지기 직전 컴퓨터에 정신이 업로드 된 그는 힘에 굶주린 과대망상증 환자로 변한다.
트랜스휴머니스트(Transhumanist)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지적·문화적 운동인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추종하는 사람들. 이들은 인간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 더 확장된 능력을 지닌 존재로 변형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시냅스 (synapse) 한 뉴런과 다른 뉴런의 접합 부위. 정확히 말해 한 뉴런의 축삭돌기와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가 연결되는 부위.
워킹 데스크 (walking desk) 책상과 트레드밀(러닝머신)을 결합한 기기. 운동을 하면서 업무를 볼 수 있다.
디지타이징 (digitizing) 아날로그 데이터를 디지털화 하는 것.
* 미래에 왜 우리는 필요없는 존재가 될것인가
오늘날의 태양전지보다 더 효율성이 없는 ‘잎사귀들’을 가진 ‘식물들’도 진짜 식물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그 결과 생명권이 먹을 수 없는 잎사귀들로 가득찰 것이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박테리아들’이 진짜 박테리아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날아다니는 꽃가루처럼 퍼져, 급속히 복제됨으로써 단 며칠 만에 생명권을 먼지의 세계로 환원시켜놓을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위험한 복제물들은 쉽사리 단단하고, 작고, 급속히 확산되는 것이 되어 정지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와 과실파리들을 통제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 할머니가 항생제 남용에 대해 극력 반대하시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는 1차 세계대전 전부터 간호사로 일하셨는데, 항생제 복용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쁘다는 상식적인 태도를 갖고 계셨다.
할머니가 진보의 적(敵)이었던 것은 아니다. 할머니는 거의 70년에 걸친 간호사 생활에서 많은 진보를 보아오셨다. 당뇨병 환자였던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애 동안 이루어졌던 개선된 치료법으로 크게 혜택을 받으셨다. 그러나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할머니는 다른 많은 상식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가 비교적 간단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 자신을 스스로 관리하는 데 있어서도 ― 또는 심지어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 너무나 많은 어려움을 갖고 있음이 명백한 이때에 우리 자신을 대신할 로봇 종(種)을 우리가 설계하고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교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할머니가 생명의 질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갖고 계셨고, 그 질서와 함께 살고, 그 질서를 존경해야 할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계셨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존경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가 결여하고 있는 겸손한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존경심에 뿌리를 둔 상식적인 견해는 흔히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이전에 올바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온 시스템들의 본질적인 취약성과 비효율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을 주목한다면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최초의 원자탄 제조와 그에 따른 군비경쟁으로부터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 우리는 잘 배우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최초의 원자탄을 제조하기 위한 노력은 뛰어난 물리학자 J. 로베르트 오펜하이머에 의해 주도되었다. 오펜하이머는 생래적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아니지만, 자신이 본 것을 히틀러의 제3제국이 서구문명에 가하는 위협으로 간주하였다. 그 위협은 히틀러가 핵무기를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명백히 심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의 강한 지적 능력과 물리학에 대한 열정, 그리고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여,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속하게 뛰어난 정신들을 규합하여 원자탄을 만들어내는 일을 이끌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노력이, 최초의 강력한 동기가 제거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계속되었다는 사실이다. 1945년 5월 연합군의 승리로 유럽에서의 전쟁이 종식된 직후 이제 원자탄 제조를 위한 노력은 멈추어져야 한다고 느낀 몇몇 물리학자들과의 모임에서 오펜하이머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의 논리는 조금 기묘했다. 즉, 원자탄 제조작업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은 일본 본토에 대한 침공으로부터 빚어질 대규모의 인명손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곧 발족될 유엔이 원자무기에 대하여 사전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좀더 그럴듯한 이유는 이미 그때까지 진행된 프로젝트의 관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원자탄 실험이 임박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최초의 원자탄 실험을 준비함에 있어서 물리학자들이 수많은 가능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을 진행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처음에 원자탄 폭발이 대기권의 발화(發火)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에드워드 텔러의 계산에 근거하여 꽤 걱정을 하였다. 다시 이루어진 계산에서 대기권 발화로 인한 세계의 파멸 위험성은 100만분의 3의 가능성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뉴멕시코의 남서부 지역을 소개(疏開)시키는 정도로만 원자탄 실험의 결과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와 별도로, 원자탄 개발이 현실화된다면 핵무기 경쟁이 시작되는 위험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실험 이후 한달 내에 두개의 원자탄이 히로시마와 나카사키를 파괴했다. 몇몇 과학자들은 그 폭탄을 실제로 일본의 도시에 떨어뜨리지 말고, 단순히 시위용으로만 사용할 것을 ― 그렇게 하면 전후의 군비통제 가능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 제안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미국인들의 마음에 아직 진주만의 비극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원자탄을 실제 사용하지 않고 시위만을 할 것을 명령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전쟁을 조속히 끝내고, 어떤 형태의 것이든 일본에 대한 침공으로 빚어질 인명상실을 막고자 하는 욕망은 매우 강력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진실은 아마도 굉장히 단순한 것이었을 것이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나중에 말한 바와 같이, “폭탄이 투하된 것은 그 누구도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나 선견지명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폭탄 투하 후에 물리학자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느낀 감정의 파도를 단계별로 묘사하였다. 처음에 폭탄이 제대로 기능을 했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 다음에 피폭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데서 오는 끔찍한 공포감, 그리고는 이제 어떤 경우에도 또다른 원자탄이 투하되어서는 안된다는 설득력있는 감정이 그들을 지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흘 뒤 또다른 폭탄이 나카사키에 투하되었다.
1945년 11월, 원자탄 투하 3개월 후 오펜하이머는 확고한 과학적 태도를 견지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계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이 부여하는 힘이 인류에게 내재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이용하여 지식의 전파에 기여하고, 그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믿음이 없다면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펜하이머는 그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에치슨-릴리엔탈 보고서 작업에 들어갔다. 그 보고서는 리처드 로디즈가 최근에 쓴 책《테크놀로지의 비젼》에서 말하고 있듯이, “무장한 세계정부에 호소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핵무기 경쟁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들이 제안한 것은 국민국가들이 핵무기에 관한 일을 하나의 국제기관에 위임함으로써 사실상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바러치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1946년 6월에 유엔에 제출되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군비경쟁을 막기 위해서 핵의 힘을 국제화하려는 분별있는 노력들은 미국의 정치 또는 내적 불신에 부딪히거나 소련의 불신에 부딪혔다. 군비경쟁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는 급속히 사라졌다.
2년 후인 1948년에 오펜하이머의 생각은 또다른 단계에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말했다. “어떤 무례함도, 어떤 농담도, 어떤 과장된 말로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조잡한 의미에 있어서, 물리학자들은 죄를 지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잊어버려서는 안될 지식이다.”
1949년에 소비에트 사람들이 원자탄 하나를 폭발시켰다. 1955년이 되면, 미국과 소련은 이미 비행기로 운반하는 데 적합한 수소폭탄 실험을 끝내놓고 있었다. 핵무기 경쟁은 시작된 것이다.
거의 20년 전《트리니티 다음날》이라는 기록에서 프리먼 다이슨은 인류사회를 핵 벼랑으로 치닫게 한 과학적 태도를 요약하였다.
나 자신 핵무기의 광휘(光輝)를 느꼈다. 과학자로서 접근하는 한 이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별들을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있고, 내 마음대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것이 내 손에 들어있다는 것을 느껴보라. 이것은 기적을 행하고, 백만톤의 바위를 하늘로 들어올릴 수 있는 에너지이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한한 힘에 대한 환상을 주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 우리의 온갖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술적 교만성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이 교만성은 사람들을 쉽사리 지배한다.
그때처럼 지금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이 만들어내는 상상된 미래의 별들의 창조주들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창조하고 상상해내고 있는 것의 현실적 결과로서 직면할 세계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거의 따져보지 않고, 명백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경제적 보상과 전지구 규모에 걸친 경쟁 속에서 내몰리고 있다.
1947년에《원자과학자협회지》는 그 잡지의 표지에 ‘종말의 날 시계’를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50년 이상 그 표지는 그때그때의 변화하는 국제상황을 반영하면서, 우리가 직면해온 핵위험에 대한 상대적인 평가를 표시해왔다. 시계바늘은 15번이나 움직여왔는데, 오늘날은 자정 9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핵무기로부터 오는 계속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국가 리스트에 추가되면서 핵의 비확산이라는 목표에 위협이 증대되었고, 그 위험으로 1998년에 시계바늘은 자정으로 더 바싹 이동하였다.
이제 우리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이 모든 기술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위험에 직면해 있는가? 절멸의 위험은 얼마나 높은가?
철학자 존 레슬리는 이 문제를 탐구하여, 인류 절멸의 위험은 적어도 30퍼센트라고 결론 내렸다. 그 반면에 레이 커즈웨일은 그가 “늘 낙관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는 전제 하에서 우리가 “사태를 극복해나갈 찬스가 반 이상 된다”고 믿는다. 이런 평가들은 썩 고무적인 것이 되지 못할 뿐더러, 거기에는 절멸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수많은 끔찍한 상황에 처할 개연성이 고려되어 있지 않다.
그러한 전망에 직면하여 일부 진지한 사람들은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지구를 벗어나 다른 별로 옮겨갈 것을 벌써 제안하고 있다. 우리는 폰 노이만의 우주선을 이용하여 별에서 별로 옮겨다니며 은하계를 우리의 식민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단계는 지금부터 50억년 후면(또는 우리의 태양계가 앞으로 30억년 내에 안드로메다 은하계와의 충돌로 파멸적인 충격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일찍) 거의 틀림없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커즈웨일이나 모라벡의 말을 믿는다면 그것은 이번 세기의 중반에 필요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이런 문제들에 내포된 도덕적 의미는 무엇일까? 만일 우리가 종(種)의 생존을 위하여 급히 지구를 떠나야 한다면, 뒤에 남아있게 될(결국 우리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리고, 설령 우리가 다른 별들로 흩어져 살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국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가게 되거나 아니면, 나중에, 그런 문제들이 우리를 따라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게 아닌가? 지구상에서의 우리의 운명과 은하계에서의 우리의 운명은 떼어놓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제안은 위험한 테크놀로지 하나하나에 대하여 우리 자신을 방어할 방패를 만들자는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에 의해 제안된 ‘전략방어계획(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은 소련으로부터의 핵공격 위협에 대한 방패로서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에 관한 토의에 관여하였던 아서 C. 클라크가 말했듯이, “탄도탄들 중 극소수만을 통과하게 할 지역방어체제를 엄청난 비용을 들여 건설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해도 전면적 국가 방어체제라는 ― 많은 사람들이 지지해온 ― 개념은 넌센스였다. 아마도 이번 세기의 가장 위대한 실험물리학자인 루이스 앨버레즈가 내게 한 말에 따르면, 그러한 계획의 주창자들은 ‘머리는 뛰어나되 상식은 없는 친구들’이었다.”
클라크는 계속해서 말하였다. “때때로 나는 전면적 방어가 한 세기 정도 내에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동원된 테크놀로지는 하나의 부산물로서 너무도 끔찍한 무기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누구도 탄도탄 같은 ‘원시적’ 무기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엔진》속에서 에릭 드렉슬러는, 실험실로부터 빠져나가거나 또는 악의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종류의 위험한 복제물을 차단하기 위하여 ― 생명권을 위한 일종의 면역체계로서 ― 하나의 적극적인 나노테크놀로지 방패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가 제안한 방패는 그 자체 매우 위험한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자가면역 문제를 일으켜, 생명권 자체를 공격하는 것을 그 어떤 것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어려움은 로봇과 유전공학에 대한 방패를 건설하는 데도 해당된다. 이러한 기술들은 너무도 강력한 것이어서 적절한 시간 내에 그것들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방패를 설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방패 개발의 부작용은 적어도 그것이 막아내고자 하는 기술들만큼 위험한 것이 될 것이다.
사회의 여명기에, 인간은 지상에서의 삶을 그저 단순한 고통의 미로로만 보았다. 그 미로가 끝나는 곳에 죽음을 거쳐 신들과 ‘영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 있었다. 히브류인들과 그리스인들에 이르러, 일부 인간은 신학적 명령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가 꽃필 수 있는 이상적인 ‘도시’를 감히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장사회의 진화를 보면서, 일부 인간의 자유는 다른 인간의 소외를 초래한다는 것을 이해하였고, 그래서 그들은 ‘평등’을 추구하였다.
자크의 도움으로 나는 이들 세개의 다른 유토피아의 목표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긴장관계 속에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네번째의 유토피아 즉,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형제애’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형제애’만이 개인의 행복과 타인들의 행복을 조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커즈웨일의 꿈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의혹의 정체를 분명히 해주었다. ‘영원’에 대한 기술주의적 접근 ― 로봇을 통한 장생불사의 꿈 ― 은 가장 바람직한 유토피아일 수 없고, 그것을 추구한다면 위험이 따른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유토피아를 선택할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새로운 윤리적 토대를 찾을 수 있는가? 나는 달라이 라마의《새로운 천년을 위한 윤리》에 담겨있는 생각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잘 알려져 있으나 거의 주목되고 있지는 않은 달라이 라마의 논리는 타자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보편적 책임과 우리 존재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보다 강력한 개념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달라이 라마가 제안하는 것은 아탈리의 ‘형제애’의 유토피아와 공명하는 것으로서 개인과 사회를 위한 적극적인 윤리적 행동의 표준이다.
달라이 라마는 계속하여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질적인 진보도 지식의 힘을 추구하는 것도 결코 행복에 이르는 관건이 될 수 없다는 것, 즉 과학과 과학적 추구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 서구인의 행복관은 그리스인들로부터 온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행복을 “삶의 폭을 넓혀주는 수월성(秀越性)의 노선을 따른 생명력의 행사”로 정의하였다.
확실히, 우리가 어떻든 행복해지려면 우리의 삶에서 의미있는 도전과 폭넓음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끊임없는 경제성장의 문화를 넘어서 우리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안적 출구를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경제성장은 지난 수백년 동안 우리에게 축복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과학과 기술을 통한 무제한적이고 무분별한 성장을 추구하여 그에 따른 명백한 위험을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레이 커즈웨일과 죤 서얼과 처음 만난지 이제 일년이 넘었다. 나는 내 주변에서 희망의 징조를 보고 있다. 경고와 포기에 관해 말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고, 현재의 곤경에 대해 내가 우려하고 있는 만큼 깊이 우려하고 있는 사람들을 나는 발견하였다. 나는 또한 내가 이미 해온 일이 아니라 앞으로 하게 될지도 모를 일에 대해 좀더 심화된 개인적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위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이상스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대답을 하라는 압력을 받으면, 그들은 “이건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뱉는다. 마치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에는 이 문제를 온종일 연구하고 있는 생명윤리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왔던 것들이다. 당신의 논리와 당신이 우려하는 것은 이미 케케묵은 이야기다 ― 라고 그들은 투덜거린다.
나는 그들이 과연 어디에 그들의 두려움을 감추어두고 있는지 모른다. 복잡한 시스템 설계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분야에 비전문가로서 들어왔다. 그러나 이런 사실 때문에 내가 느끼는 우려가 줄어들 수 있는가? 나는 많은 권위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 문제가 거론되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닥쳐온 위험을 무시해도 좋다는 뜻이 되는가?
안다는 것은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휘두르는 무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가?
원자과학자들의 경험은 개인적 책임을 느껴야 할 필요를 명백히 보여준다. 사태는 너무도 급속히 진전되고,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발전은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전개되어왔던 것이다. 우리는, 원자과학자들의 경우처럼,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손으로 만든 결과물에 의해 우리가 놀람과 충격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우리는 좀더 사려깊어야 한다.
전문가로서의 나의 계속적인 일은 소프트웨어의 신뢰성을 개선해 나가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는 하나의 도구이며, 하나의 도구 설계자로서 나는 내가 만든 도구의 용도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언제나 소프트웨어를 좀더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은, 그것이 갖는 많은 용도를 고려할 때, 세계를 좀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장소로 만들 것이라고 믿어왔다. 만일 내가 그 반대라고 믿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도덕적 인간으로서 이 일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 우울해진다. 이제부터 내게 진보라는 것은 씁쓸한 어떤 것일 것이다.
영화〈맨해튼〉의 거의 마지막에서, 우디 알렌이 침상에 누운 채 녹음기에다 대고 말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는 스스로 불필요한, 신경증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우주에 관한 해결 불가능한 끔찍한 문제들로부터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짧은 스토리를 쓰고 있다.
우디 알렌은 “삶은 어째서 살 만한가?”라고 묻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그에게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루코 맑스, 윌리 메이즈, 쥬피터 교향곡 제2악장, 루이 암스트롱의〈포테이토 헤드 블루스〉, 스웨덴 영화, 플로베르의《감정교육》, 말론 브란도, 프랭크 시내트라, 세잔느의 사과와 배들, 샘 우의 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배우이자 그의 연인인 트레이시의 얼굴 ….
우리들 각자는 자기나름의 소중한 것들을 갖고 있다. 그것들에 대해 마음을 쓰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의 본질을 확인한다. 궁극적으로, 소중한 것들을 보살피고 아낄 수 있는 우리의 커다란 능력 때문에 나는 우리가 우리 앞에 닥친 위험한 문제들에 맞설 수 있으리라고 낙관한다.
내가 지금 당장 희망하는 것은 여기서 제기된 문제들에 관하여 테크놀로지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애착에 기울어지지 않은 분위기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좀더 큰 토론을 마련하여,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다. 우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테크놀로지들의 희생자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밤늦게까지 앉아있다. 지금 거의 새벽 6시가 되었다. 나는 좀더 나은 해답을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 축복일까 위기의 시작일까
우리의 기술과 도구는 늘 우리를 확장했다. 불을 이용해 음식을 섭취하면서 소화와 씹는 기능은 약화됐지만 턱 관절이 변형되어 언어발성에 더 좋은 구조로 변화하고 에너지를 뇌에 공급했다.
인류의 계통을 보면 ‘사람속’에 해당하는 ‘호모’로 시작하는 구성원은 200 만에서 250만년 전 등장한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이델베르긴스로 진화해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타르인이, 아프리카에서는 해부학적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뇌라고 부르는 신피질의 발달에 힘입어 뛰어난 사회성과 협력능력을 개발했고 현재 지구의 최강자가 되어 있다. 인류가 만들어낸 많은 도구는 우리의 능력을 확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제한된 생물적 기능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록히드 마틴의 포티스 [사진: 록히드 마틴]) |
도구는 늘 인간을 확장해왔다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합리주의, 이어서 실용주의가 세계 문화를 이끌면서 20세기에 들어와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과 과학이 이들과 결합, 인간과 사회의 진화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기술 만능주의 시각이 널리 퍼졌다.
인류가 생물학적으로 진화하는 데에는 수만 년도 부족할 수 있지만, 우리가 가진 기술과 과학이 인류에게 새로운 진화 방식을 제공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새로운 사상과 사유를 불러들였고 이에 대한 긍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함께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기계 지능이나 초지능의 출현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초인본주의 사상인 트랜스 휴머니즘이나 포스트휴머니즘, 인간의 확장에 대한 얘기가 많은 미디어와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1923년 영국 유전학자인 할데인이 그의 에세이에서 첨단 과학을 인간 생물학에 적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거대한 혜택을 예견하면서 시작했다고 본다.
이후 줄리안 헉슬리가 1957년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글을 통해 인류 전체가 원한다면 자신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해 큰 영향을 미쳤고 트랜스휴머니즘의 창설자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1998년 철학자 닉 보스트롬과 데이비드 피어스 등이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 연합(WTA, 2008년 휴머니티 로 명칭 변경 )’을 결성,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을 하면서 트랜스휴머니즘을 두 가지로 정의했다.
1. 노화를 제거하고 지능, 육체, 정신을 크게 개선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며 이성의 응용으로 인간 조건 개선의 가능성, 정당성을 지지하는 지적 문화적 운동
2. 인간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의 잠재적 위험, 결과 및 가능성을 연구하며 이같은 기술의 개발과 사용에 관한 윤리 문제를 연구20세기 이뤄진 많은 과학적 진보는 인간 진화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 많은 SF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가 됐다.
또 인공 지능 기술에 대한 기대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지능 기계 등장에 대한 가설을 쏟아냈다. 이미 1965년 암호학자 어빙 굿은 ‘지능 폭발’이란 개념을 통해 초지능 기계가 인류가 만들어내는 마지막 발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레이 커즈와일처럼 기술 특이점을 말하는 사람들은 기술을 통한 인류의 새로운 진화 방식에 대해 관심을 더 가졌고, 작가이자 미래학자인 FM-2030은 새로운 인간이 가지는 기술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정의하기 시작했다.
버너 빈지가 ‘다가오는 기술적 특이점(1993)’이란 논문에서 생명 공학과 신경 공학, IT 기술의 발달로 30년 이내에 인류의 지능을 초월하는 인공 지능이 출현해 인간 시대가 종언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해 특이점이라는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 2006년에는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 를 발간,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를 논의하게 됐다.
커즈와일은 2045년을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하는 해로 설정해 기술의 진보가 인간이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할 것임을 천명했다. 특이점 주의자들은 우리가 거의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고 인간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기술 유토피아적 사상을 갖고 있다. 또 이의 실현이 30년 정도 후에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행사 장면 [사진: ETH]) |
기술을 통한 인간의 확장
지금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우리 기억을 외부에 확장시킨 도구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전화번호나 일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학자들을 이를 인간의 외부 기억 공간 또는 ‘외부피질 (exocortex)’ 이라고 말한다.
1960년대 미국 DARPA(고등연구계획국)의 책임자였던 심리학자 조셉 릭라이더는 ‘인간-컴퓨터 공존(1960)’이란 논문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강하게 연결되면 서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면서 인간의 뇌가 전에는 불가능하던 수준의 사고를 하고 정보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와 인공 지능의 후원자였고 인터넷의 전신인 아르파넷의 연구를 지원했다.
사실 인간이 발명한 다양한 기호와 문자를 통한 정보의 저장, 수학은 모두 인간의 마음을 기능적으로 재정리하는 외부 기호 시스템이며 기억 능력의 외부화이다.
구글의 글래스나 최근 관심을 끄는 홀로렌즈, 가상 현실 기기, 나아가 스냅챗의 스펙터클스 조차 우리의 기능을 확장하고 경험의 수준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만드는 기기라고 할 수 있다.
군사 목적을 위한 인간의 확장은 다양하게 이뤄져왔다. 엑소스켈레톤은 하인라인의 SF소설 ‘스타쉽 트루퍼스(1959)’에 이미 등장한다. 2010년 엑소 바이오닉스의 헐크 (HULC: Human Universal Load Carrier)나 사르코스/레이시온의 XOS, XOS2 모두 군인의 능력을 강화하는 엑소스켈레톤 슈트다.
하지만 이 제품들은 크기와 파워 소비 문제로 개발이 보류됐다. 헐크는 배터리를 통한 자체 전원 공급을 구현했지만 큰 소음이 문제였다.
이후, 초기 모델을 개선하고 단순화해 모터나 전자 장치가 없는 패시브 엑소스켈레톤인 iHAS가 개발돼 작업장이나 산업체에서 사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이 분야에는 록히드 마틴의 포티스, 혼다의 몸무게 지원 기기 등 지지 장치나 강화된 글로브, 로봇 팔 등이 있다.
엑소스켈레톤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걷게 하거나 불가능했던 움직임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보이고 있다. 최근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세계 최초의 사이배슬론이 열렸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다양한 경기를 함으로써 인간을 지원하는 기술의 현재를 살펴보는 행사다.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로버트 리너 교수가 주도해 만들어졌으며 스위스 국립 ‘로봇역량연구센터’가 주최한다. 슈퍼 장애인 올림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과 기계의 연결은 ‘브레인 컴퓨터 인터페이스(BCI)’라는 영역에서도 여러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뇌파를 통한 로봇 팔의 제어, 원숭이 뇌를 이용한 타이핑, 생각으로 조정하는 드론, 생각으로 제어하는 로봇 등 수많은 연구 결과가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는 인간의 확장이 생각과 기계가 연결되는 수준으로 이루어지면서 인공지능과 인간의 결합에 한 걸음 다가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뇌와 기억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학습능력을 높이거나 정보를 뇌에 직접 이식하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HRL연구소는 훈련된 조종사의 두뇌에서 얻은 전기 신호를 비행을 배우는 초보자에게 전달, 훈련효과가 33% 개선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앞서 2011년에는 보스턴대학과 일본 쿄토의 ATR계산뇌과학연구소가 fMRI를 분석하면서 특정 시각적인 면을 유도해 시각 기능의 성과를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전체 뇌 영역에서 활동을 제어할 수 있도록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는 우리가 매트릭스 영화에서 봤던, 쿵푸나 헬리콥터 조정법을 바로 두뇌로 다운로드시키려는 미래의 도전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2013년 MIT의 뇌과학자들이 쥐를 이용해 거짓 기억을 뇌에 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였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우리의 지적 능력을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기억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통해 장기적으로 마인드 업로딩으로 가는 길을 찾아내려고 한다.
마인드 업로딩 또는 전체 두뇌 에뮬레이션(WBE)이라고 하는 분야는 우리 정신의 상태를 컴퓨팅 장비로 복사할 수 있다는 가설을 입증하려는 시도다. 이런 장비는 현재의 컴퓨터를 넘어서 양자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기반의 인공 뉴럴 네트워크를 포함한다.
트랜스휴먼 연구의 핵심 중 하나인 마인드 업로딩은 인간 삶의 확장이고 또 다른 의미의 영생을 말하기도 한다. 내 마음의 상태를 어떤 휴머노이드 로봇에 업로드 함으로써 생물학적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주 여행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는 장기적인 비전인 것이다.
(사이배슬론에 선보인 BCI [사진:ETH]) |
우려의 목소리와 비판
트랜스휴머니즘에 가장 강력한 반대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상가 중 한 명이 프란시스 후쿠야마이다. 2004년 ‘포린 폴리시’의 특집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각들’을 통해 그는 트랜스휴머니즘을 그 중 하나로 꼽았다.
그가 주장하는 문제의 첫 번째는 인간 평등의 원칙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을 능가하는 트랜스휴먼이 등장하면 그들의 권리나 남겨진 사람의 권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부유한 사람만이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등의 질문은 제리 카플란이 ‘인간은 필요 없다’에서 제기한 문제이다.
인간 평등을 위협하는 아이디어는 훨씬 악의적일 수 있다. 더구나 강화된 인간과 일반 인간이 스포츠, 투자, 시험, 사업에서 경쟁하는 것이 합당한지 우리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자기 몸의 일부를 보다 기능이 좋은 기기로 교체하고 싶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재력이 있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문제가 없는 신체를 더 강력한 모듈로 갈아 치우는 것을 윤리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아직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로 인간의 확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인간이 좋은 인간인지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 사회의 선을 자신들이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훨씬 더 복잡한 진화의 산물이고 우리는 부분의 합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전체다. 또 때로는 선과 악이 양면성을 갖는다.
많은 트랜스휴머니스트나 인간을 넘어서는 기계 지능의 탄생을 얘기하는 미래학자들의 가정은 기술의 진보가 지수 함수적으로 빠르게 이뤄진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이를 지수 함수의 오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국의 물리학자인 폴 데이비스는 자원의 한계로 지수 함수적 발전은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래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씨어도어 모디스 역시 순수한 지수 함수를 따르는 것은 자연에 없으며 실제는 로지스틱 함수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평평한 부분과 한계에 달하는 S 커브를 주장하는 것이다.
커즈와일의 특이점 주장이 종교에 가까운 신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유대-기독교의 종말 시나리오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두뇌에 대한 역 공학적인 면에서 보더라도 데이터 수집은 지수 함수적으로 일어나겠지만 통찰은 단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뇌과학자 데이비드 린덴). 예를 들어, 유전자에 대한 데이터 확보는 급증하지만 유전학에 대한 이해는 매우 느리게 이루어지는 것과 같다.
마인드 업로딩 역시 존재론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내 마음을 다 옮긴 어떤 장치나 존재는 나와 같은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버전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인간성은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일지, 내 기억의 일부가 남의 기억이나 조작된 정보로 이루어진다면 그 것은 나의 정체성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 피할 수 없나
영국 왕립학회장을 지낸 마틴 리스는 인간과 같은 ‘유기적 지능에게는 장기적인 미래가 없다’라는 글에서 지구의 운명을 볼 때, 인류가 아닌 기계 지능이 우주의 영역으로 확장하는데 더 적합하고, 지금과 같은 유기적 인간 문명은 잘해봐야 수만 년 지속이 한계일 것이라 예측했다.
하버드대 천문학자 디미타르 사셀로프는 인공 지능은 생물학과 기계의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화하며 결국 ‘우리와 그들’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양의 팽창에 의해 지구를 탈출할 존재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외부 행성을 식민지화할 것이고 이를 위해 인간 업로드를 실행해 인공지능이 우리를 구원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프랭크 티플러 튤레인대학 수리물리학 교수).
즉 인간과 기계의 결합과 새로운 존재의 탄생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진화이고, 당분간 그 결과가 인간의 제어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며, 나중에는 이성과 합리성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주제 중 하나는 강화된 또는 확장된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어떤 규칙과 규범이 필요한 것인가 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공 지능으로 무장한 어떤 존재, 소프트웨어나 로봇과 함께 공존하는 문제일 것이다.
인간의 확장이 지식 정보뿐만 아니라 물리적 능력의 확장, 또는 확장된 자아인 동반자(companion) 로봇 같은 독립된 개체로 이루어진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런 존재에 대한 법적 권리와 의무는 어디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애플의 시리, MS의 코타나, 아마존의 알렉사 같은 가상 비서의 경우도 점점 나의 정체성을 습득하거나 개인화가 이루어지면 결국 그것은 나의 확장일 것이다. 또 내가 사용하는 소셜 로봇 역시 나의 확장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그들이 갖는 권리와 책임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기술 발전이 인간의 확장으로 전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과연 새로운 인간 진화의 과정이 되고, 우리가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면서 트랜스휴먼 또는 포스트휴먼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인지는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은 여전히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건 우리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의 존엄성조차 긴 미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점이 아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우리가 계속 유지할 것인가 또는 유지할 수 있는가는 이제 가까운 장래에 우리들의 결정에 달려 있을 수 있다.
<이 기사는 테크M 제43호(2016년 11월)에 실린 기사입니다.>